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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지아2기_스피노자] 강사인터뷰1 - 고병권 ::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1
우리실험실 / 2016-02-26 / 조회 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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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지아2기_스피노자] 에티카 Ethica :: 강사인터뷰1 - 고병권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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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실험자들]20161학기 파레지아 주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입니다. 스피노자가 어떤 사람이고, 에티카는 어떤 책인지 다들 기대하고 궁금할 것입니다. 이 기대와 궁금증을 중심으로 고병권선생님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더불어 여러분에게 스피노자와 에티카가 지닌 매력들이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강사인터뷰는 2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인데, 1회에는 스피노자가 중심이고 2회에는 에티카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근대의 시작과 동시에 근대에서 이탈한 ‘야만적 별종’

스피노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흔히 근대성의 문제를 많이 거론합니다. 스피노자가 살았던 17세기는 근대가 막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고,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경험과 합리성이 중요해진 시대였습니다. 스피노자는 흔히 대륙의 합리론자, 혹은 근대와 더불어 시작된 근대 비판가라고 불립니다. 근대의 초기이지만, 스피노자에게서 이미 탈근대적 요소가 보이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탈리아의 철학자 네그리는 스피노자와 관련해서 쓴 책에 ≪야만적 별종≫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번 강의에서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데카르트와의 관계도 언급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이 강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그보다는 제가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를 얼마나, 그리고 왜 좋아하는지가 이 강의를 통해서 많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철학의 문제가 삶의 문제였던 마지막 철학자

보통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스피노자는 달랐어요. 그의 책을 읽으니,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보였어요. 푸코는 스피노자를 ‘철학의 문제가 삶의 문제였던 마지막 철학자’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저에게도 스피노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스피노자가 쓴 미완의 책 ≪지성교정론≫의 앞부분에는 아주 유명한 구절 하나가 등장합니다.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이것이 철학을 시작하는 스피노자의 선언입니다.

스피노자에게는 철학을 한다는 것이 전공을 선택하고 지식을 쌓는 문제가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문제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기로 했다고 결심하는 것이 스피노자에게는 바로 철학의 시작이었지요. 스피노자에게 중요한 문제는 진리가 아니라 참된 삶이었습니다.

 

철학자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저에게 스피노자는 철학자가 무엇이고, 철학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스피노자는 철학을 시작할 때부터 동시대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대학 바깥에서 철학을 시작했고, 학자들과 함께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스피노자와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스피노자 역시 평생 렌즈 깎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거부하고, 대학의 교수 자리도 거부하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뒤 다시 돌아가지 않은 일화도 유명하지요.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평생 거의 소유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간 점입니다. 스피노자는 평생동안 하숙생으로 살았고, 유품도 생계를 위해 필요했던 렌즈 깎는 기계와 책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호의도 대부분 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반면에 대학과 학술원의 권위에 대해서는 자주 비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차분한 급진주의, 이렇게 다정한 비인간주의, 이렇게 단호한 긍정

스피노자 강좌에 대한 소개를 이런 문구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차분한 급진주의, 이렇게 다정한 비인간주의, 이렇게 단호한 긍정.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떠오른 말들이었어요. 스피노자를 떠올릴 때 제가 늘 했던 생각들이 이 문구 안에 녹아있습니다. 저는 스피노자를 매우 차분하면서 급진적인 사람으로 봅니다. 진짜 급진적인 사람, 무언가를 바꾸어야 하는 사람은 냉정하고, 차분해야 합니다. “슬퍼하지도, 비웃지도 말고, 다만 인식하라”고 했던 스피노자의 차분함이 대중의 양면성을 알면서도 민주주의를 긍정할 수 있도록 했을 겁니다. 

 

세계는 인간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또 스피노자는 세계가 인간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인간 중심의 종교, 인간 중심의 윤리학을 벗어날 때, 우리가 신의 신체 안에서 신의 일부로 우리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에티카≫는 바로 그 새로운 윤리학에 대한 책입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긍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부정은 무능력에서 오고, 우리를 우리로 존재하지 못하게 합니다. 스피노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에티카≫에서 윤리의 극한과 개체가 스스로 작동하는 원리인 코나투스를 이야기합니다.

함석헌의 시 중에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저는 스피노자에 대해 생각할 때 이 시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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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댓글목록

무긍님의 댓글

무긍

뒤늦게 둘러보다, 선생님의 글을 보고 느낀바가 많아 글을 올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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